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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도요타 생산방식(TPS)의 본질 — 개선이 아니라 원가구조를 바꾸는 일

제알남 읽는 시간 약 9분
제전복을 입은 라인 관리자가 편성인원 보드 앞에 서 있는 모습

TPS를 낭비 제거로 오해하면 생기는 일

도요타생산방식(TPS)을 처음 접하는 현장 관리자들은 대부분 “낭비 제거”라는 말에 꽂힌다. 안 쓰는 동작을 없애고 재고를 줄이고 불필요한 이동을 줄이면 된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수준에서 멈추면 TPS는 그냥 정리정돈 캠페인으로 끝난다.

TPS의 진짜 목적은 낭비 제거 그 자체가 아니라 TPS 원가구조, 그러니까 그 낭비를 없앴을 때 원가구조가 실제로 바뀌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레스 공정에서 작업자 한 명이 부품을 쌓아놓고 대기하는 시간이 사이클당 8초 있다고 하자. 이 8초를 없애는 개선을 했다고 원가가 바로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 작업자가 여전히 그 라인에만 붙어 있고 인건비도 그대로 나가고 있다면 8초를 아꼈다는 숫자는 보고서에만 존재하는 개선이다. TPS가 요구하는 건 그 8초를 모아서 작업자 한 명을 다른 라인으로 재배치하거나 그 라인의 필요 인원 자체를 줄이는 것까지다. 낭비 제거는 원가 절감의 재료일 뿐이고 실제 원가절감은 그 재료로 인원과 설비, 공간을 재배치할 때 일어난다.

실제로 같은 개선을 두 라인에 적용했을 때 결과가 갈리는 경우를 보면 이해가 빠르다.

  • A라인: 프레스 공정 대기시간 8초를 없애는 개선을 하고 끝냈다. 작업자는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았고 인건비도 그대로 나갔다. 개선 보고서에는 “사이클타임 8초 단축”이라고 적혔지만 월말 손익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 B라인: 같은 개선을 하되 8초씩 줄어든 여유시간을 모아서 인접한 조립 공정 작업 일부를 프레스 작업자가 겸임하도록 재배치했다. 그 결과 조립 공정 인원 1명을 다른 라인으로 옮겼고, 그 인건비(월 약 320만원)만큼 실제로 원가가 줄었다.

두 라인 모두 “개선했다”고 보고하지만 손익계산서에 찍히는 숫자는 A라인은 0원, B라인은 연간 약 3,840만원이다. TPS를 도입한다는 게 A와 B 중 어느 쪽을 뜻하는지 처음부터 명확히 하지 않으면 조직 전체가 A라인 방식의 개선만 반복하게 된다.

제전복을 입은 작업자가 PCB 조립 라인 사이를 이동하며 기판을 확인하는 모습

JIT와 지도카, 설비 개선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JIT(적시생산)와 지도카(자동화) 두 축도 같은 논리로 봐야 한다.

  • JIT: 단순히 재고를 줄이는 기법이 아니라 재고로 가려져 있던 불량과 설비고장, 라인정지를 강제로 드러내는 장치다. 재고가 넉넉하면 앞 공정에서 불량이 나도 뒷 공정은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가지만, 재고를 줄이면 그 불량이 즉시 라인정지로 이어지고 그제서야 원인을 잡게 된다.
  • 지도카: 이상이 생기면 라인을 세워서 불량품이 다음 공정과 다음 고객사까지 흘러가는 것을 막는 구조다.

이 논리는 설비 쪽 개선까지 포함하는 TPS 원가구조 전반에 똑같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도장 공정에서 설비 예열시간을 20분에서 12분으로 줄이는 개선을 했다고 하자. 하루 3회 가동한다면 하루에 24분, 월 20일 가동 기준으로 월 480분, 즉 8시간이 절약된다.

이 8시간을 그냥 “여유시간이 생겼다”로 남겨두면 원가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반면 이 8시간만큼 하루 가동 가능 대수를 늘려서 외주로 돌리던 물량 일부를 내재화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외주단가가 개당 1,200원이고 내재화로 개당 700원까지 낮출 수 있다면 월 5,000개를 내재화했을 때 월 250만원, 연간 3,000만원의 원가차이가 발생한다.

예열시간 8분을 줄인 것 자체는 기술적 개선이지만 그 개선이 원가로 연결되려면 반드시 그 시간을 무엇에 쓸지까지 설계에 포함시켜야 한다.

지도카를 자동화와 혼동하면 생기는 함정

현장에서 TPS를 3정5S나 제안활동과 같은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정리정돈을 잘하고 개선 제안을 많이 내면 TPS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이건 TPS의 준비단계일 뿐 본체는 아니다.

지도카를 설비 자동화와 혼동하는 것도 흔한 실수다. 지도카는 “이상이 생기면 라인을 세운다”는 판단 기준이지 사람 손을 자동설비로 바꾸는 게 핵심은 아니다. 오히려 자동화만 도입하고 이상 발생 시 정지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불량품이 자동으로 더 빠르게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는 역효과가 난다.

실제로 한 도장 라인에서 자동 도포설비를 들였는데 도막 두께 이상 감지 로직 없이 그냥 속도만 높였다가 불량률이 오히려 1.2퍼센트에서 2.8퍼센트로 올라간 사례가 있다. 자동화에 이상감지와 정지 기준이 붙어야 비로소 지도카가 된다. 자동화만 들여놓는다고 지도카가 되는 건 아니다.

제전복을 입은 작업자가 안돈 경고등 앞에서 PCB 기판을 확인하는 모습

개선을 원가로 연결하는 KPI와 조직 설계

현장에서 TPS를 도입한다며 개선 건수나 제안 건수를 KPI로 잡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방향이 반대다. 개선이 실제 편성인원 감소, 설비 가동시간 단축, 재고금액 감소로 이어졌는지를 추적해야 한다. 개선 100건보다 인원 1명을 재배치한 개선 1건이 손익계산서에는 훨씬 크게 찍힌다.

TPS를 도입할 때 던져야 할 첫 질문은 “이걸 없애면 어느 계정과목이 줄어드는가”다. “무엇을 없앨까”는 그다음이다.

어떤 프레스-용접 연속 공정에서 프레스 쪽에 매 사이클 6초의 여유가 생겼다. 이 여유시간을 그냥 두지 않고 프레스 작업자에게 인접한 용접 공정의 검사 업무 일부를 겸임시켰더니, 용접 공정 전담 검사원 1명을 다른 신설 라인으로 재배치할 수 있었다.

TPS를 제대로 굴리는 공장을 보면 이런 식으로 개선활동과 다능공화가 항상 같이 간다. 개선으로 만든 여유시간을 받아줄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개선도 결국 A라인 사례처럼 숫자로만 남는다.

관리자 평가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TPS 운영의 방향이 달라진다. 어떤 공장은 반기 평가지표를 개선 제안 건수에서 편성인원 감소 인원수와 그에 따른 절감액으로 바꾼 뒤, 제안 건수는 절반으로 줄었지만 실제 인건비 절감액은 오히려 40퍼센트 늘었다.

제안 건수가 평가지표일 때는 사소한 개선도 실적으로 올리려는 경향이 생기지만, 절감액이 지표가 되면 관리자들이 스스로 “이 개선이 인원 재배치까지 이어지는가”를 따지고 나서야 제안을 올린다. KPI 설계 하나가 현장을 바꾼다.

제전복을 입은 두 작업자가 함께 PCB 기판을 조립하는 모습

TPS를 루틴으로 정착시키는 법

TPS 도입 회의를 할 때는 개선 아이디어를 듣는 순간 바로 이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 개선으로 줄어드는 시간이나 동작을 구체적으로 누구의 어떤 업무에 다시 쓸 것인지, 그 재배치가 실제로 인건비나 설비비, 외주비 중 어느 계정과목을 얼마나 줄이는지 답할 수 있어야 그 개선을 채택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답이 나오지 않는 개선은 나쁜 게 아니다. 아직 절반만 설계된 개선일 뿐이다. 후속 조치로 재배치 계획과 예상 절감액까지 같이 적어서 승인받는 프로세스를 만들면 개선 건수는 줄어들어도 실제 원가절감액은 오히려 늘어난다.

TPS는 한 번 프로젝트로 끝내고 인증패를 받는 성격의 활동이 아니다. 택트타임이 바뀌고 수주량이 바뀔 때마다 낭비의 정의도 달라지기 때문에 오늘 개선한 내용이 6개월 뒤에는 다시 낭비로 되돌아가 있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TPS를 담당하는 조직은 개선 활동을 분기별 이벤트로 운영하기보다 매월 라인별 편성인원과 사이클타임, 재공 수준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루틴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루틴이 있어야 개선이 이 시리즈가 다뤄온 TPS 원가구조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원가를 낮추는 체계로 자리잡는다.

TPS를 도입할 때 현장에서 가장 크게 부딪히는 지점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개선으로 여유시간이 생긴 작업자를 다른 라인으로 옮기려 하면 익숙한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저항이 생긴다. 이 저항을 그냥 지시로 누르면 표면적으로는 재배치가 되지만 실제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재배치 대상자에게는 새 공정 교육 기간을 최소 1주일 이상 확보해주고, 재배치 이후에도 원래 공정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지원 인력으로 부를 수 있다는 안전판을 마련해주면 저항이 크게 줄어든다. 여러 현장에서 공통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한 라인에서 검증된 재배치 사례를 월간 생산회의에서 공유하면 비슷한 여유시간이 있는데도 손대지 못하고 있던 다른 라인 관리자가 같은 방식을 빠르게 적용할 수 있다. 개선 사례를 개별 라인 안에만 묻어두면 매번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게 되지만, 사례를 공유하는 구조를 만들어두면 조직 전체의 개선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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